hololive 프로덕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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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의 역사를 서술한 문서.
2. 멤버 데뷔, 졸업 연표 [편집]
3. 2017-2018년: 설립 [편집]
YAGOO는 hololive 프로덕션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전부터 캐릭터 비즈니스에 종사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하츠네 미쿠를 비롯한 VOCALOID의 성공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콘텐츠를 만들어갈 플랫폼의 잠재성을 주목하고 있었으며, 이를 자신의 원래 전문 분야였던 VR 기술에 접목시켜 기업을 성장시키고자 하였다. # 커버 주식회사가 막 설립되었을 때는 아직 버츄얼 유튜버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도 않은 시기[1]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현재의 버츄얼 유튜버들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VR 캐릭터를 이용한 방송 플랫폼을 구축하여 인터넷 방송인이 노래, 춤, 게임 등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목적은 2017년 초에도 세워져 있었다. #[2]
하지만 대략적인 방향성만 정해졌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 급한 대로 VR 탁구 게임을 개발해 출시하거나, 가뜩이나 인력도 부족한데 모바일 VR 게임 개발과 VR 게임 방송 프로그램 개발을 병행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 이때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토키노 소라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었던 친구A가 커버 주식회사가 보유한 VR 방송 관련 기술을 눈여겨보고 YAGOO에게 접근했고, 스튜디오에서 관련 장비를 사용하여 방송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한 것이 YAGOO가 버츄얼 유튜버 관련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YAGOO도 'perception neuron'과 같이 저렴한 모션 캡처 장비가 개발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사업을 고려하고는 있었지만 # 버츄얼 유튜버 사업을 시작하는 데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버츄얼 유튜버 기업이라고 하면 지금의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이나 니지산지같이 인터넷 방송인을 관리하는 인터넷 기업이 아니라, 키즈나 아이와 같이 특정 버츄얼 유튜버가 기업의 주체가 되어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는 콘텐츠 기업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커버 주식회사는 YAGOO를 포함해 직원이 단 둘뿐인 데다가[3] 사무실도 "(사무실이 아니라) 동아리방(部室)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구색만 간신히 갖춘 조그마한 기업이었다. #[4] "헝그리 정신이 넘치는 환경이었다."라고 장난스럽게 표현하고 있지만 변변한 수입이 없어 이전에 운영했던 회사를 매각한 자본을 깎아먹으며 버티고 있었고, YAGOO 본인은 회사에 필요한 기자재 등을 구입하느라 사비를 1,000만 엔 가까이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 즉, 커버 주식회사는 애당초에 기존에 추진하고 있었던 VR 게임 개발 사업과 버츄얼 유튜버 사업을 동시에 진행할 여유가 없는 회사였고, 만약 버츄얼 유튜버 사업을 벌인다면 다른 프로젝트는 모두 포기한 채 그곳에 모든 자원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한 버츄얼 유튜버 시장이 지금처럼 무르익지도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VR 게임 개발을 포기하고 버츄얼 유튜버에 투신하는 것은 스스로 가능성을 좁히는 길이라고 느껴진 것도 YAGOO를 고민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 지금은 무거운 전후 사정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친구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었던 당돌한 여고생과 평범한 IT 기업 사장이 담대한 결정을 내렸다."라고 다소 가볍게 요약되곤 하지만, 이 선택은 YAGOO가 회사와 자신의 미래를 걸고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한 끝에 내린 것이다. #
결국 소라를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 기업이 탄생하게 되었고, 첫 데뷔 영상에 13명[5]의 시청자들이 모이면서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hololive라는 이름도 원래 커버 주식회사가 개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이름으로, 소라의 생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한 것이 그 시작이다.[6] 소라의 방송은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시험삼아 시도해본 17Live 방송에서 최대 2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접속하면서 처음으로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후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겨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다. #
이후 2017년 12월 21일부터 "버츄얼 아이돌로서 라이브 방송을 해보고 싶으신 분"을 모집하면서 버츄얼 유튜버 MCN으로 조금씩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2019년 이전까지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홀로라이브", "방송 서비스 홀로라이브" 등으로 홀로라이브를 소개했지만 2019년 초부터 "VTuber 사무소 홀로라이브"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했다. 2019년 12월 2일 여성 버츄얼 유튜버 그룹 hololive, 남성 버츄얼 유튜버 그룹 HOLOSTARS, 그리고 이노나카 뮤직을 모두 모아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이라는 큰 그룹의 하위 그룹으로 통합시켜 운영하기 시작했는데[7], 이 중 이노나카 뮤직은 유일한 멤버였던 AZKi가 홀로라이브 소속으로 이전되면서 2022년 4월 1일 해체되었지만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이라는 체제는 아직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컨셉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hololive 프로덕션이지만, 홀로라이브는 "버츄얼 아이돌 그룹"을 목표로 시작된 사업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키즈나 아이, 미라이 아카리 등 당시의 여느 버츄얼 유튜버들과 마찬가지로 토키노 소라, 사쿠라 미코 프로젝트 등 몇몇 캐릭터를 전면에 세워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업을 운영하고자 했다. # 하지만 2018년부터 니지산지를 시작으로 Live2D 모델을 이용한 실시간 스트리밍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버츄얼 유튜버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홀로라이브 프로덕션도 2018년 4월에 방송용 어플리케이션의 기능을 대폭 간소화한 뒤 # 버츄얼 유튜버로 활동하고자 하는 개인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때는 커버 주식회사의 규모가 굉장히 작아 소속 멤버들에게 변변한 지원이나 매니지먼트를 제공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홀로라이브만의 방향성이나 활동 방침이 뚜렷하지도 않았었기에 팬들은 물론 소속 멤버이나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아이돌 그룹이라는 인식은 거의 없었다. #1 #2
하지만 대략적인 방향성만 정해졌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 급한 대로 VR 탁구 게임을 개발해 출시하거나, 가뜩이나 인력도 부족한데 모바일 VR 게임 개발과 VR 게임 방송 프로그램 개발을 병행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 이때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토키노 소라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었던 친구A가 커버 주식회사가 보유한 VR 방송 관련 기술을 눈여겨보고 YAGOO에게 접근했고, 스튜디오에서 관련 장비를 사용하여 방송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한 것이 YAGOO가 버츄얼 유튜버 관련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YAGOO도 'perception neuron'과 같이 저렴한 모션 캡처 장비가 개발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사업을 고려하고는 있었지만 # 버츄얼 유튜버 사업을 시작하는 데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버츄얼 유튜버 기업이라고 하면 지금의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이나 니지산지같이 인터넷 방송인을 관리하는 인터넷 기업이 아니라, 키즈나 아이와 같이 특정 버츄얼 유튜버가 기업의 주체가 되어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는 콘텐츠 기업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커버 주식회사는 YAGOO를 포함해 직원이 단 둘뿐인 데다가[3] 사무실도 "(사무실이 아니라) 동아리방(部室)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구색만 간신히 갖춘 조그마한 기업이었다. #[4] "헝그리 정신이 넘치는 환경이었다."라고 장난스럽게 표현하고 있지만 변변한 수입이 없어 이전에 운영했던 회사를 매각한 자본을 깎아먹으며 버티고 있었고, YAGOO 본인은 회사에 필요한 기자재 등을 구입하느라 사비를 1,000만 엔 가까이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 즉, 커버 주식회사는 애당초에 기존에 추진하고 있었던 VR 게임 개발 사업과 버츄얼 유튜버 사업을 동시에 진행할 여유가 없는 회사였고, 만약 버츄얼 유튜버 사업을 벌인다면 다른 프로젝트는 모두 포기한 채 그곳에 모든 자원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한 버츄얼 유튜버 시장이 지금처럼 무르익지도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VR 게임 개발을 포기하고 버츄얼 유튜버에 투신하는 것은 스스로 가능성을 좁히는 길이라고 느껴진 것도 YAGOO를 고민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 지금은 무거운 전후 사정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친구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었던 당돌한 여고생과 평범한 IT 기업 사장이 담대한 결정을 내렸다."라고 다소 가볍게 요약되곤 하지만, 이 선택은 YAGOO가 회사와 자신의 미래를 걸고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한 끝에 내린 것이다. #
결국 소라를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 기업이 탄생하게 되었고, 첫 데뷔 영상에 13명[5]의 시청자들이 모이면서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hololive라는 이름도 원래 커버 주식회사가 개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이름으로, 소라의 생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한 것이 그 시작이다.[6] 소라의 방송은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시험삼아 시도해본 17Live 방송에서 최대 2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접속하면서 처음으로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후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겨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다. #
이후 2017년 12월 21일부터 "버츄얼 아이돌로서 라이브 방송을 해보고 싶으신 분"을 모집하면서 버츄얼 유튜버 MCN으로 조금씩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2019년 이전까지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홀로라이브", "방송 서비스 홀로라이브" 등으로 홀로라이브를 소개했지만 2019년 초부터 "VTuber 사무소 홀로라이브"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했다. 2019년 12월 2일 여성 버츄얼 유튜버 그룹 hololive, 남성 버츄얼 유튜버 그룹 HOLOSTARS, 그리고 이노나카 뮤직을 모두 모아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이라는 큰 그룹의 하위 그룹으로 통합시켜 운영하기 시작했는데[7], 이 중 이노나카 뮤직은 유일한 멤버였던 AZKi가 홀로라이브 소속으로 이전되면서 2022년 4월 1일 해체되었지만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이라는 체제는 아직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컨셉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hololive 프로덕션이지만, 홀로라이브는 "버츄얼 아이돌 그룹"을 목표로 시작된 사업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키즈나 아이, 미라이 아카리 등 당시의 여느 버츄얼 유튜버들과 마찬가지로 토키노 소라, 사쿠라 미코 프로젝트 등 몇몇 캐릭터를 전면에 세워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업을 운영하고자 했다. # 하지만 2018년부터 니지산지를 시작으로 Live2D 모델을 이용한 실시간 스트리밍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버츄얼 유튜버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홀로라이브 프로덕션도 2018년 4월에 방송용 어플리케이션의 기능을 대폭 간소화한 뒤 # 버츄얼 유튜버로 활동하고자 하는 개인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때는 커버 주식회사의 규모가 굉장히 작아 소속 멤버들에게 변변한 지원이나 매니지먼트를 제공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홀로라이브만의 방향성이나 활동 방침이 뚜렷하지도 않았었기에 팬들은 물론 소속 멤버이나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아이돌 그룹이라는 인식은 거의 없었다. #1 #2
4. 2019-2022년 [편집]
4.1. 아이돌 그룹화 [편집]
이런 홀로라이브의 정체성이 크게 바뀌게 된 것은 2019년 5월경으로, 이때부터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은 단순히 "버츄얼 유튜버를 운영하는 회사"가 아닌 "IP 창출 기업"을 표방한다. # 홀로라이브 소속 멤버들을 인터넷 방송인의 일종으로만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를 살려 IP를 확장하고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고자 한 것이다. 커버 주식회사는 처음부터 캐릭터 비지니스를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였던 만큼 # YAGOO의 입장에서는 수년간 방황하다 비로소 본래 목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홀로라이브는 2019년 5월에 홀로라이브 멤버들의 일상을 다루는 단편 애니메이션 홀로그라 시리즈를 시작하였으며, 여름에는 "홀로라이브 서머"라는 이름으로 코믹 마켓에 대규모로 참가하고, 수영복 3D 모델을 제작하는 등 본격적으로 홀로라이브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기 시작했다.[8] 그리고 2019년 9월 홀로라이브의 첫 공식곡인 Shiny Smily Story가 공개되었고,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의 운영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아이돌 그룹 프로젝트가 발족했다.
당시 홀로라이브는 만성적인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아이돌 그룹 컨셉을 앞세워 개최한 홀로라이브 페스티벌 "Nonstop Story"가 기대를 뛰어넘는 대흥행을 기록하면서 이 승부수는 큰 성공으로 돌아왔다. YAGOO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 라이브 공연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하면서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라이브 공연이 대성공하면서 단번에 인기가 폭발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공연 이후 홀로라이브는 상황이 180도 반전되어 자금이 너무 넉넉해 다 쓰고 싶어도 쓸 곳이 없을 정도의 상황이 되었으며, 이 시기의 성장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서 홀로라이브는 사업 확장을 잠시 멈추고 새 직원을 고용하고 체제를 정비해야만 했을 정도였다. # 2020년 12월 21일부터 22일까지 양일간 진행된 두 번째 홀로라이브 페스티벌 역시 성황리에 막을 내리며 성공을 이어갔고, 2021년 무렵에는 홀로라이브 탤런트는 아이돌이라는 인식이 팬들 사이에서도 강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홀로라이브는 2019년 5월에 홀로라이브 멤버들의 일상을 다루는 단편 애니메이션 홀로그라 시리즈를 시작하였으며, 여름에는 "홀로라이브 서머"라는 이름으로 코믹 마켓에 대규모로 참가하고, 수영복 3D 모델을 제작하는 등 본격적으로 홀로라이브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기 시작했다.[8] 그리고 2019년 9월 홀로라이브의 첫 공식곡인 Shiny Smily Story가 공개되었고,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의 운영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아이돌 그룹 프로젝트가 발족했다.
당시 홀로라이브는 만성적인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아이돌 그룹 컨셉을 앞세워 개최한 홀로라이브 페스티벌 "Nonstop Story"가 기대를 뛰어넘는 대흥행을 기록하면서 이 승부수는 큰 성공으로 돌아왔다. YAGOO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 라이브 공연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하면서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라이브 공연이 대성공하면서 단번에 인기가 폭발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공연 이후 홀로라이브는 상황이 180도 반전되어 자금이 너무 넉넉해 다 쓰고 싶어도 쓸 곳이 없을 정도의 상황이 되었으며, 이 시기의 성장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서 홀로라이브는 사업 확장을 잠시 멈추고 새 직원을 고용하고 체제를 정비해야만 했을 정도였다. # 2020년 12월 21일부터 22일까지 양일간 진행된 두 번째 홀로라이브 페스티벌 역시 성황리에 막을 내리며 성공을 이어갔고, 2021년 무렵에는 홀로라이브 탤런트는 아이돌이라는 인식이 팬들 사이에서도 강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4.2. 해외 진출 [편집]
당시 니지산지에 비해 홀로라이브는 인지도가 낮았고, 일본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다만 시라카미 후부키와 미나토 아쿠아를 비롯한 멤버들이 중국에서 많은 팬들을 모으게 되었는데, 타니고 모토아키가 인터뷰를 하며 공공연하게 "우리는 일본보다 중국 팬의 수가 더 많다."라고 밝히고 나아가 "중국에서 VTuber 그룹이라고 하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1위"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YAGOO는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일본의 내수시장만으로는 성장을 담보할 수 없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성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돌파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중국 공략에 나서게 되었다. # 중국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홀로라이브는 2019년에 큰 어려움 없이 빌리빌리와 정식 계약을 맺어 hololive CN을 출범시키는데 성공하였고, 벽람항로 콜라보레이션을 성사시키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키류 코코-아카이 하아토 대만 언급 논란이 발생하면서 홀로라이브는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유의미한 규모의 중국 팬들이 남아있어 몇몇 멤버들은 빌리빌리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비슷한 시기 시라카미 후부키의 Im. Scatman 동영상과 나츠이로 마츠리의 반창고 사건 클립 등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며 중국뿐 아니라 영어권 시청자들에게도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9] 이후로도 사쿠라 미코, 이누가미 코로네 등의 멤버들도 연이어 밈으로 떠오르면서 영어권 홀로라이브 시청자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이 팬들이 방송 내용에 자막을 달아 유튜브에 짧은 클립을 업로드하면서 이 클립을 우연히 보게 된 해외 시청자들이 다시 홀로라이브로 유입되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2019년 말 일본계 미국인인 키류 코코가 데뷔하면서 홀로라이브를 향한 영어권 시청자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졌으며,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은 2020년 9월에 hololive ENGLISH를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때 데뷔한 Myth 멤버들은 모두의 기대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기록적인 흥행가도를 달렸고, 특히 가우르 구라는 역대 버츄얼 유튜버의 구독자 수 기록을 연이어 갱신하면서 홀로라이브를 넘어 당대 버츄얼 유튜버의 상징과도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전에도 트위치 등에서 활동하는 영어권 버츄얼 유튜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업 규모에서 버츄얼 유튜버 그룹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것은 hololive ENGLISH가 처음이었으며, 이를 통해 영어권의 버츄얼 유튜버 파이가 커지면서 MCN이 여럿 설립되기도 하였다.
한편 비슷한 시기 시라카미 후부키의 Im. Scatman 동영상과 나츠이로 마츠리의 반창고 사건 클립 등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며 중국뿐 아니라 영어권 시청자들에게도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9] 이후로도 사쿠라 미코, 이누가미 코로네 등의 멤버들도 연이어 밈으로 떠오르면서 영어권 홀로라이브 시청자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이 팬들이 방송 내용에 자막을 달아 유튜브에 짧은 클립을 업로드하면서 이 클립을 우연히 보게 된 해외 시청자들이 다시 홀로라이브로 유입되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2019년 말 일본계 미국인인 키류 코코가 데뷔하면서 홀로라이브를 향한 영어권 시청자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졌으며,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은 2020년 9월에 hololive ENGLISH를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때 데뷔한 Myth 멤버들은 모두의 기대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기록적인 흥행가도를 달렸고, 특히 가우르 구라는 역대 버츄얼 유튜버의 구독자 수 기록을 연이어 갱신하면서 홀로라이브를 넘어 당대 버츄얼 유튜버의 상징과도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전에도 트위치 등에서 활동하는 영어권 버츄얼 유튜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업 규모에서 버츄얼 유튜버 그룹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것은 hololive ENGLISH가 처음이었으며, 이를 통해 영어권의 버츄얼 유튜버 파이가 커지면서 MCN이 여럿 설립되기도 하였다.
5. 2023-2025년 [편집]
5.1. IP 확장 [편집]
홀로라이브는 기존의 아이돌 컨셉의 라이브 공연을 계속 개최하면서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DECO*27와의 합작 앨범 holo*27, HoneyWorks와의 콜라보레이션 hololive × HoneyWorks, 기존의 곡들과 다른 분위기의 노래를 앞세운 Blue Journey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면서 유명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늘리고 소속 멤버들의 음악 활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메이저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호시마치 스이세이와 모리 칼리오페에 이어 AZKi의 메이저 데뷔가 결정되고 홀로라이브와 유니버설 뮤직의 합동 음악 레이블 holo-n이 창설되는 등 메이저 음악 신과의 접점도 늘어났다. 2023년 9월 유닛을 중심으로 한 무대 활동에 중점을 둔 산하 그룹 DEV_IS를 선보이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도 하였으며, 2025년 7월 홀로라이브 소속 멤버들의 노래를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음악 레이블 hololive RECORDS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음악 및 공연 활동 외에도 홀로라이브 얼터너티브, 마법소녀 홀로위치! 등을 통한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도 적극적으로 이어가고 있으며, 관련 상품도 다각화하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홀로라이브 소속 캐릭터를 활용한 트레이딩 카드 게임, 홀로라이브 오피셜 카드 게임이 크게 성공하여 2024년 하반기부터 홀로라이브를 견인하는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음악 및 공연 활동 외에도 홀로라이브 얼터너티브, 마법소녀 홀로위치! 등을 통한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도 적극적으로 이어가고 있으며, 관련 상품도 다각화하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홀로라이브 소속 캐릭터를 활용한 트레이딩 카드 게임, 홀로라이브 오피셜 카드 게임이 크게 성공하여 2024년 하반기부터 홀로라이브를 견인하는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5.2. 글로벌 사업 확대 [편집]
홀로라이브 EN은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팬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고 실제로도 일부 멤버들은 EN 운영팀을 다소 미심쩍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홀로라이브 프로덕션 측에서도 이를 좌시하고만 있지는 않았으며 경영 컨설턴트 'Alex Kiyoshi Pelz'를 고문으로 발탁하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였다. Alex의 주도하에 당시 EN의 핵심 스태프였던 오메가알파는 해임되었고, 홀로라이브 해외 운영팀 내부의 산적한 문제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 이후 Advent와 Justice 두 유닛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홀로라이브의 위치를 다시금 공고히 하였고, 이후 2024년 3월 12일 영미권 버튜버들과 팬덤들을 원활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COVER USA를 설립했다고 발표하였다. 동시에 LA 다저스와 협업하여 2024년 7월 5일, # 2025년 7월 5일 # 다저 스타디움에서 "hololive night" 이벤트를 연이어 개최하는 등 미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외에도 유럽 국가 출신 멤버가 3명이 포함된 유닛 Justice를 꾸리고, 유럽+영국 지역의 상품 판매를 담당하는 현지 매니저를 채용하는 등 유럽 시장 진출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
미국 외에도 유럽 국가 출신 멤버가 3명이 포함된 유닛 Justice를 꾸리고, 유럽+영국 지역의 상품 판매를 담당하는 현지 매니저를 채용하는 등 유럽 시장 진출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
[1] 2016년 중반으로, 버츄얼 유튜버란 명칭을 만든 시점인 키즈나 아이의 데뷔는 약 반 년 뒤의 이야기다.[2] 훗날 토키노 소라가 되는 초기 3D 모델도 확인할 수 있다.[3] 이때 YAGOO와 함께 고생한 후쿠다 잇코(福田 一行)는 이후 커버 주식회사의 CTO가 되었다. #[4] 본문에는 2017년 11월이라고 적혀있지만 이는 오타이다. 2016년 5월에 이미 회사를 양도한 뒤 East Ventures 사무실에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5] 2021년 7월 28일, 소라가 밝히길 13명은 평범한 일반 시청자들이었다고 한다. 서구권에서는 전설의 13인(legend of the 13)이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 전체 시청자는 50명 이상이었지만 이들 중 소라의 지인이나 방송 관계자들의 숫자를 빼면 대략 13명이 남았다고 밝혔다.[6] 원래는 AR 기술을 사용해 실제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소라를 볼 수 있는 등 선진적인 기술이 도입되었지만, 이후 큰 쓸모가 없어져 2018년 4월부터 페이스 트래커 기능만 남기고 간소화되었다. #[7]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이라는 이름은 2019년 12월 2일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홀로라이브 프로덕션의 역사는 토키노 소라의 데뷔와 함께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여긴다. #[8] 이후 이어지는 홀로라이브 얼터너티브, 홀로어스, 홀로라이브 에러 등의 시도들도 홀로라이브 멤버들을 이용한 IP를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의 연장선이다.[9] 대표적으로 훗날 hololive Myth로 데뷔한 타카나시 키아라와 모리 칼리오페가 각각 후부키와 마츠리의 반창고 클립을 계기로 홀로라이브를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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